여기는 PC방

예지가 개학식이라 일찍와서 친정엄마집에 함께 글을 올리러 들렀더니,
고놈의 컴퓨터가 신랑만큼이나 말을 안들어 난생 첨으로 PC방에 들어와봤다.
예지는 예전에 아빠랑 살때 가끔 다녔다고하더니 내 기를 죽이며 컴을 현란한 솜씨로 다루고있다.

그런데 아직 새파랗게 젊디젊은 남정네들로 시끌벅적한 이 분위기가,
10년간이나 집안에서 붙박이장처럼 살았던 나에겐 무척이나 낯설다.

어젯밤에 민지가 자기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모, 나 내일도 할머니집에 가고싶어, 가도 되지?"
민지는 할머니집이 무척이나 좋은지 어제도 가서 한참을 놀았다.

설날 명절에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카드를 드린다고 30분동안이나 도이랑 씨름을 했다.
글자는 언니보고 아무종이에나 써 달라고 하더니,그대로 따라 썼다.
친정엄마는 내가 가정위탁을 하는것을 그다지 찬성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는 예쁜지 오면은 많이 귀여워해주셔서 민지는 외가에 가자고하면 좋아서 갈때까지 열번도 더 넘게 "언제가요?" 하고 묻는다.

며칠전 난 민지의 새로운 면을 보고 반해버렸다.
도이사촌동생이 우리집에 놀러를 왔는데,자기보다 겨우 2살 어린 동생의 손을 꼭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어찌나 잘해주던지...
당연히 귀챦아서 짜증을 낼줄 알았는데 동생에게 책을 몇권이나 열심히 읽어주었다.( 물론 그림만보고 얘기를 만들어내서 읽어주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언니들과 놀때는 손바닥만하던 가슴이 동생과 놀때는 바다만큼 넓어지는것이었다.
가끔 언니들에게 아무것도 아닌일로 너무 심하게 반응을해서 크게 걱정된적이 몇번 있었는데,
자제가 안되서가 아니라 언니라서 어리광을 부린것일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드니,
몸에서 담석하나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민지는 동생과 노는게 진짜로 즐거운가보다.
자기 맘대로 할수도 있어서 그런것같기도하고, 아무튼 그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한가지 부탁을 했다.
" 민지야! 지금 그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운데, 언니들과 놀때도 조금은 그래줄수있어?"
" .... 응..."
하더니 끄덕끄덕한다.
그러나 손가락까지 걸고 한 그약속은 몇시간도 되지않아서 부도가 나버렸다.

이 세상에서 내가 본 아이중에서 가장 잘 웃는 아이 민지,
이 세상에서 내가 본 아이중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은 아이 민지,
이 세상에서 내가 본 아이중에서 가장 질문이 많은 아이 민지,
이 세상에서 내가 본 아이중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아이 민지.

이상하게도 민지는 보일때보다 눈앞에 안보일때 더 크게 자리매김을 한다.
오면 더 잘해주어야지,나중에 후회되지않을만큼 큰 사랑을 주어야지 하다가도,
막상 음식만드는데 따라나디며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녹음기처럼 반복할때면,
귀챦은 맘이 슬며시 들면서 저리가서 언니들과 놀아라하고 말하게 된다.
또 장볼때 김을 꼭 사온다고 해놓고는 김만 빠뜨리고 다른것만 다 사온적도 있어서 민지를 김빠지게 한적도 있었다.

민지야!
이모가 처음 네가 우리집에 오게됬을때의 그 마음가짐을 잃지않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별로 잘해주는것도 없는데 우리집을 좋아해주어서 너무 고마워.
만일 다음주 일요일날 날씨가 좋으면 꼭 우방랜드에 가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민지의 소원은 우방랜드잖아.

이    름 :	민지이모
날    짜 :	2005-02-14(14:29)
방    문 :	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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