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탄생
경문은 고향 이웃에 사는 강희를 눈여겨보았다. 18살의 젊음을 발산하는 명랑한 여학생이었다. 어느 날 둘이 시내에서 만나게 되었다. 경문은 밥을 사 주었다. 맛있게 먹는 강희가 귀여워 보였다. 강희도 경문 아빠가 키도 크고 밥도 잘 사주고 해서 싫지는 않았다. 추운 겨울 날 찻집에서 만난 그들은 저녁밥을 함께 먹고 맥주도 한 잔 마셨다. 그냥 헤어질 수 없어서 나이트에 가서 춤을 추었다. 둘은 함께 모텔로 향했다. 함께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몇 개월 뒤에 강희는 속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생리가 끊겼다. 몇 달 전에 경문 오빠와 나누던 가졌던 관계가 생각나서 겁이 났다.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임신이라고 확인시켜 주었다. 강희는 그 순간 앞길이 캄캄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강희는 휴대폰을 들어서 경문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그들은 저녁에 만났다. 결론은 함께 살기로 했다.
고향에서 살 수 없어서 멀리 대구로 가서 살기로 했다. 대구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직장을 얻어서 살아 보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어서 알바 수준의 직장 밖에는 얻을 수 없었다. 배는 불러오는데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이리 저리 다니면서 일해서 간신히 두 사람 먹고 살 수 있었다. 산달이 되어서 강희는 아이를 낳았다. 경문은 아들을 안았을 때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인생이 비비 꼬이는 듯 했다. 아들은 나와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 이름은 대현이라 작명했다. 대현이는 지혜롭게 인생을 살기를 간절해 원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붙여 주었다.
강희는 산 후 조리해 줄 사람도 없었다. 산후 조리원에서 1주일 입원해서 조리를 하고 온전하지 않은 몸을 끌고 퇴원을 했다. 경문은 아빠가 되었다. 직장을 구하면서 알바를 계속했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아이 출산비와 조리원 비용들은 다 카드로 결제를 했다. 출산 준비물들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 용품들도 카드로 결재를 했다. 아이와 아내를 제대로 먹일 수 있는 형편도 되지 못했다. 알바해서 번 돈으로 카드빚을 턱 없이 부족했다. 결국 결재하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강희는 아이를 길러 보기 위해서 알바 전선에 뛰어 들었다. 경문 오빠는 부쩍 술이 늘기 시작했다. 둘은 툭 하면 말다툼을 했다. 마음에 심한 상처를 받을 때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19살의 나이로 살아갈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찻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경문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렇다고 달리 길이 보이지 않았다. 경문 오빠의 무능함과 둘 사이의 갈등으로 강희는 가출을 결심한다. 그리고 어느 날 실행에 옮겼다. 대현이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경문오빠랑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현이는 할아버지에게 맡겨졌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대현이를 돌보았다. 4살이 되지 어린이 집으로 보내졌다. 아침에 어린이 집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어린이 집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몇 번 볼까 말까했다. 그래도 어린이 집에 가서 놀 때는 재미있었다. 어린이 집에서 가끔 현장학습 나갈 때가 있었다. 그 때는 보통 엄마가 대구역이나, 관광버스가 있는 곳 까지 대려다 주고, 마칠 때도 엄마가 와서 데리고 간다. 그런데 대현이는 항상 할아버지가 데려다 주고, 데리러 왔다. 아이들이 엄마 이야기를 할 때면 대현이는 자랑할 엄마가 없었다. 아빠 엄마 얼굴을 그리라고 선생님이 종이와 크레파스를 나누어 주었다. 대현이는 아빠는 그릴 수 있지만 엄마의 얼굴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현은 마음속에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엄마가 없을까? 할아버지에게 집에 가서 물어 보았다. 할아버지는 엄마는 돈 벌로 갔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없는 엄마를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
2. 대현아 잠시만 기다려라.
경문은 이력서를 몇 군데 넣었지만 일거리는 없었다. 알바자리에서 일해서 간신히 먹고 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늘 대현이를 보면 미안한 생각이로 마음이 무거웠다. 정상적인 가정의 아빠와 엄마 밑에서 자라야 될 텐데.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 인지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졌다. 아버지는 일어나지 못했다. 제대로 효도도 하지 못하고 실망만 시켰는데 돌아가시다니! 마음이 천길 만길 무거웠다. 아이를 이제는 맡길 데가 없었다. 고아원에 보내야 하는 걸까? 몇 군데 알아보았더니 대안가정운동본부에서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지 않고 위탁부모의 가정에서 키워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본부에서 심사한 건전한 가정에서 아이를 1년 혹은 2년을 키워서 돌려준다는 것이다. 경문은 차라리 좋은 환경에서 잠시 대현이가 자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에 보내는 것보다 좋겠다는 판단이 서서 대한가정운동본부에 대현이를 맡겼다. 대안가정을 통해서 대현이가 위탁될 가정은 직장이 안정적이고, 기독교를 믿는 가정이라고 통보가 날아 왔다. 경문은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대현아 2년만 기다려라 아빠가 좋은 가정을 만들어서 꼭 데려가겠다.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하고 결심했다.
아침에 온 가족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아내는 가족들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풍기 후배 가정에서 아이를 위탁해서 키우는데 우리 가정도 아이를 위탁 받아서 키우면 좋겠다. 남편과 아이들은 뜻밖의 제안에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세상에 불쌍한 아이들을 맡아서 길러 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반응했다. 남편은 위탁해서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가 건전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은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우리 가정이 그 일을 해야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내의 생각이 좋은 생각이라고 한 것이 아니고, 대안 가정의 제도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하고 좋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아이들 데리고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은 캠프를 떠났다. 남편은 캠프에 참석 중인데 아내에게서 휴대폰이 걸려왔다. 대안가정운동본부에서 아이가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우리 가정에 데리고 와서 키우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아니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당신이 지난번에 좋다고 했으니 데리고 온다. 너무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는 아내에게 뭐라고 말할 여지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이 아이는 부모가 다 있기 때문에 양육비가 나오지 않는단다. 그래서 사람들이 데리고 가기를 꺼려하는데 기독교 가정이라서 소개했다면서 데리고 오겠단다. 남편은 아내에게 물었다. 키울 자신이 있나? 아내는 키우겠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남편은 캠프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내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아내의 결심이 저렇게 단호한데 어떻게 하겠나. 세상에 불행하게 태어난 아이를 우리 집에 있는 동안 행복하게 해 주자고 결심을 한다.
3. 대안 가정에서 살기
내가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대현아 큰 아빠다. 아이는 짧은 군인머리를 깎았다. 온 몸이 바싹 말라 있었다. 아내 손을 잡고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표정은 밝았다. 엄마를 모르고 자란 대현이는 아내가 친 엄마인 것처럼 착 달라붙어서 살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영오지 않았다. 나는 그러는 그가 이해는 되었다. 엄마는 기억에 없지만 아빠는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현이는 그 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엄마를 누리기를 원했다. 대현이에게는 이제 아무도 엄마를 소유할 수 없다. 오직 대현이 만이 엄마를 소유할 수 있어야 했다. 대현이는 날 침대에서 밀어내고 었다. 잘 때도 엄마는 대현이가 소유해야 된다. 차를 탈 때도 엄마는 대현이 차지이다. 엄마 옆에는 항상 대현이가 앉았다. 대현이 외에는 아무도 엄마의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 나는 그런 대현이에게 아내를 내 주었다. 아니 아내를 빼앗겼다. 아내는 대현이의 엄마가 되어 버렸다. 차를 타도 대현이가 아내를 차지하고, 잠을 잘 때도 대현이가 엄마로 아내를 빼앗아 가버린 것이다. 그런다할지라도 나는 대현이가 행복해 한다면 만족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대현이는 식성이 우리 가족이랑 많이 달랐다. 우리 가족은 채식 중심이고, 대현이는 육식 중심이다. 우리 가족은 밥을 먹는 속도가 빠르다. 대현이는 밥을 매우 천천히 먹는다. 우리 가족은 여성중심이다. 아들이 없고 딸 둘이 있기 때문이다. 두 딸은 다 대학생들이다. 대현이는 5살이다. 누나들은 인형을 많이 가지고 있다. 대현이는 총, 칼, 차 종류의 장난감을 원했다. 대현이는 입이 짧아서 음식을 조금 밖에 먹지 않는다. 좀처럼 몸에 살이 찌지 않는다. 또래 중에서도 덩치가 제일 적다. 고집은 황소고집이다. 자기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는다. 대현이는 과자를 좋아 한다. 그런데 과자를 많이 먹으면 혀 바닥에 얼룩이 생긴다. 바이러스에 감염 되었나 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대현이와의 가정생활은 계속되었다.
대현이는 성장하면서 몇 가지 일들을 만들었다.
2007년 영주동부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다. 입학하는 날 15년 전에 딸 입학 때 초등학교엘 갔는데 이제 49세에 다시 초등학교 입학을 시키려니 왼지 부자연스럽다. 아이는 잘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학부모의 연령 차이 때문에 어색함을 느낀다. 대현이는 아마 다른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온 집이 있기 때문에 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네비게이션과 전자수첩 사건
대현이가 1학년에 되었을 때 친구들에게 잘 보이길 원했다. 그는 자기 반에 짱인 아이들에게 아빠의 네비게이션과 엄마의 전자수첩을 갔다 주었다. 그날 아빠는 대현이 반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자기 아이가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뒷면에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한 것이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은 찾았지만 전자수첩은 영영 못 찾고 말았다. 전자수첩을 받은 아이가 교실 책상 속에 넣어두고 귀가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간 것 같다.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아이를 입양해야할지 갈등이 생겼다.
휴대폰 사건
2학년에 진급한 대현이가 또 사건 하나를 저질렀다. 우리 집에 다녀간 분이 휴대폰을 잊고 두고 갔다. 나는 그 휴대폰은 챙겨서 돌려주려고 잘 보이는 테이블 위에 두었다. 그런데 대현이가 그걸 가지고 학교에 간 것이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둘째 딸을 보냈다. 대현이은 휴대폰을 정문 앞 문방구 집 전자 오락기 뒤에 숨겨두었다. 미리 알았기 망정이지 정말 나중에 방과 후에 알았다면 휴대폰 소리에 아마도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가버렸을 것이다. 이런 아이를 입양해야할지 갈등이 생겼다.
음식물 사건
대현이는 입이 짧다. 아무거나 먹지 못한다. 그래서 바싹 말랐다. 나와 아내는 대현에게게 과일이나 견과류 들을 먹으라고 준다. 그런데 아내가 청소를 하다가 대현이 책상 구석에서 그동안 나와 아내가 주었던 대부분의 음식들이 감추어져 있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내는 속이 상해서 울면서 대현이를 꾸짖었다. 이런 아이를 입양해야할지 갈등이 생겼다.
좋은 것 보다 욕을 더 잘 배우는 대현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좋은 것 보다 대현이는 욕을 더 잘 배운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욕을 한다. 아빠 엄마가 볼 때는 욕을 하지 않지만 아이들끼리 놀 때면 듣기 거북스러운 욕을 마구 해 댄다. 우리의 양육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갈등이 생긴다. 우리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4. 좋은 추억들
대현이와 정이 들었다. 어느 날 대현이가 큰 아빠에서 아빠라 부르기 시작을 했다. 자전거를 같이 타면서 친해지기 시작했다. 목욕도 같이 하고, 인라인도 함께 타면서 대현이는 위탁아동이 아닌 한 가족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소백산은 비로봉은 1420m 산이다. 대현이 1학년 때 1420m 소백산 비로봉을 올랐다. 그리고 소백산 연화봉은 1394m 이다. 그 산을 대현이를 데리고 금년(2008년) 봄에 올랐다. 초등 2학년으로 소백산을 오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현이는 힘들다고 산에게 화를 내면서도 목적지까지 올랐다. 우리는 높은 산에 오르면서 힘든 일도 극복하고, 인내하고 극기하는 법을 배웠다. 몇 년 전 털보 3부자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오른 기사가 생각이 났다. 그들도 높은 산을 오르고, 타국을 출입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낮선 음식을 먹으면서 수많은 어려움들을 함께 극복했을 것이다. 비록 몸으로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기르는 아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남탕 목욕탕에 들어가는 일은 아들과 아버지만 가능하다. 대현이가 우리 가정에 올 때부터 잘 쓰는 말이 있다. 그것은 대머리 빡빡이 라는 말이다. 나와 둘이서 대화할 때는 문제가 안되는데 목욕탕에서 문제가 생겼다. 스님이 목욕하러 왔다. 대현이 그 스님을 보고 아빠! ‘대머리 빡빡이다.’… 목욕탕에서 나는 대현이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고 교육시킨 후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배꼽을 잡고 웃었다.
몇 번 엄마처럼 아들의 떼를 박박 문질러 봤다. 느낌은 아들이 잠시도 가만히 몸을 맡기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이다. 그래서 그냥 놀게 했다. 우선 욕탕에서 몸을 불려야 되기 때문에 욕탕 게임을 시작했다. 욕탕에서 머리를 잠그고 얼마나 오래 있는가를 재어 주었다. 처음에는 열까지, 나중에는 스물까지 버티었다. 아이는 재미있어 했다. 다른 손님이 없을 경우에는 수영 및 잠수를 하게 했다. 대현이는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밖으로 불러서 대충 몇 군데 타월로 간단히 밀어준 후 스스로 샴푸와 비누를 하게 했다. 그런 후에는 아빠와 목욕하기를 좋아한다. 나도 혼자 가는 것 보다 아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즐겁다. 점점 가족으로 묶여져 가는 느낌이 좋다.
공부는 내가 맡지 않는다. 처음에 참고서를 사서 분량을 정해 주어서 하게 했다. 그랬더니 끝까지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비슷한 학부모의 조언을 받아 들여서 구몬 학습을 시켰다. 그날그날 분량을 잘 하고 있다. 누나와 함께 바이올린을 레슨 받는다. 남자라서 그런지 별 흥미는 없다. 대현이 부지런히 연습해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어 보지 않을래? 별로 좋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기본을 익힌 후에 판단해야할 것 같다. 태권도 도장에 등록해서 다니다. 태권도는 좋아 한다. 역시 남자는 운동을 좋아한다. 나는 혹 결손 가정의 아이라서 운동을 하면 나중에 싸움꾼으로 변신할까봐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아내에게 수영이나 테니스를 가르치자고 했더니 아이 좋아하는 걸 시키자며 일방적으로 태권도를 등록했다. 몰론 아이는 좋아한다. 하지만 내 뜻이 관철되지 않아서 유쾌하지는 않다. 도장에서 돌아오면 나는 대현이에게 발차기를 해 보라고 한다. 제법 그럴듯한 자세가 나온다. 아이가 좋아한다는 사실에서 그냥 두기로 했다.
학교생활의 적응
2학년 초 학부모 초청의 날이었다. 아내는 뒤 늦게 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 모임에 갈 수 없는 처지이다. 아내의 나이 올해 쉰이다. 젊은 아이들만큼 머리가 잘 돌아 가지 않는다. 따라서 성실성이라도 보여야할 처지이다. 결국 내가 잠시 사무실에 이야기 하고 아이를 위해서 학부모 모임에 갔다. 500명 정도의 학부모들이 강당에 모였다. 남자는 2명이었다. 어떤 할아버지 한 사람과 나 뿐이었다. 다른 분은 할아버지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지만 난 참 어정쩡한 나이라서 사실 좀 민망스러웠다. 전체 모임이 끝난 후 학급별 모임의 안내를 받아서 2학년 7반 교실을 찾아 갔다. 이미 담임 선생님께서 자리잡고 계셨고, 젊은 어머니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선생님께서 내게 하신 첫 말씀은 ‘어떻게 오셨습니까?’ 였다. ‘제가 양대현이 아버지입니다.’ ‘그렇습니까?’ ‘다른 볼일로 오신 줄 알았습니다.’ 모임을 그렇게 마치고 선생님의 대현이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아직 글자를 잘 모르고 셈이 잘 되지 않는단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난 후 교문을 나서는 내 마음을 무거웠다.
1학기를 지난 지금 2학기에 접어든 대현이는 많이 변했다. 글씨도 좋아졌고, 셈도 학습지 덕분에 좋아졌다. 산만한 태도도 나아졌다. 학교 앞 오락기에 빠져서 몇 번이고 영어학원을 빼 먹은 좋지 않은 습관도 고쳐졌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대현이가 많이 좋아 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학습태도와 학습 성취도가 좋아졌다고 한다. 학교생활도 좋아졌는데 아이들들 먼저 집적거리지 않는단다. 교육의 목표는 변화와 성장에 있다. 대현이가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맘속에 뿌듯한 기분이 든다. 이 아이가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대현이와 우리 가족은 남이 아닌 한 가족의 유대함을 갖게 되고 대현이와 함께 한 시간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5. 입양 제의
세월은 3년이 흘러갔다. 경문은 개인 파산의 상태였지만 대현이를 생각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생활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간간히 대안가정운동본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대현이의 모습을 본다. 경문은 대현이의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다시 일어서서 제대로 살기로 결심을 한다. 좀 더 경기가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부천에서 직장을 얻었다. 대현이를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가정을 가져야 된다. 부천에서 민영이라는 새 여자를 만났다. 친해졌을 때 대현이 이야기를 했다. 민영은 대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경문은 민영이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경문은 대현이 문제를 깊이 생각했다. 대현이가 지금 자라고 있는 대한 가정이 좋은 가정인 것 같아 보였다. 자신의 가정에서 자라는 것 보다는 이제 한 가족처럼 되어버린 위탁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가정운동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경문은 몇 달 동안 고심한 끝에 대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친자 포기를 표현했다. 그 길이 모두에게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희는 철부지로 살아왔던 과거가 원망스러웠다. 찻집에서 일하면서 세상 물정을 다 배운다. 이 남자 저 남자도 접해본다. 그가 만나는 남자들이란 대동소이했다. 그렇다고 나온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현재의 처지가 그랬고, 경문 오빠도 자신을 받아 줄 것 같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경문에게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고 한다. 집을 나온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지라 이제 과거를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운명을 맡길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맘에 들면 남자가 원치 않는다. 남자들은 그냥 자신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을 더 좋아했다. 정작 운명을 같이할 남자는 없었다. 반대로 자신에게 청혼을 하는 사람은 눈에 차는 남자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 저질은 실수가 자신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저주가 되었다. 아!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게 될 줄이야! 강희는 대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내가 낳은 유일한 혈육을 위해서 내가 해 준 일은 후일 철들었을 때 상처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대안가정운동본부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입양 동의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연락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양육을 수탁해 온 대안가정의 제의에 이제는 응할 수밖에 없었다. 대안가정 사무실에서 사람이 왔다. 강희는 눈물을 흘리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리고 양육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 순간 강희는 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괴로움을 맛보았다. 내가 낳은 유일한 혈육을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희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이 대안가정 사무원은 위로의 말을 전했다. 입양하는 가정이 좋은 가정이니 대현이는 훌륭하게 잘 자랄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벗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계기로 삼으세요. 강희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대현이 엄마를 용서해라! 그리고 훌륭하게 잘 자라다오. …
6. 포기 그 아픔
대안가정에서 내게 연락이 왔다. 대현이는 성장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위탁할 수 없단다. 시설로 보내야 된단다. 우리가족은 다시 한 번 갈등의 시간을 가졌다. 대현이를 고아원에 보내야 하는가? 우리가 입양할 것인가? 몇 달 동안 온 가족이 고민을 했다.
우리가 대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인가? 나이 차이가 너무 나는데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2학년 학부모 모임 때 교실에 갔더니 담임선생님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잘못 찾아 오신것 아닙니까? 물었던 2학년 1학기 학부모 모임이 생생하다. 모인 엄마들은 모두 30대 초반의 엄마들이었다. 내가 늙은 부모로 대현이가 성장할 때 장애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또 사춘기 때 더 좋은 형편의 가정이 입양할 수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나를 이 집에서 입양해서 더 편하게 살게 해 주지 못하게 했느냐면 어떻게 할까? 사실이다. 더 좋은 가장이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가정에서 대현이가 자랄 수 있을 텐데, 더 자상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을 텐데, 더 젊은 부모 밑에서 자랄 수 있을 텐데, 왜 나를 입양해서 이렇게 밖에 양육할 수 없었습니까? 나는 책임감에대한 중압감을 느낀다.
그리고 대현이랑 나는 40년 차이다. 다른 부모들 보다 훨씬 일찍 죽게 된다. 그러면 대현이에게 우리가 또 다시 부모 없이 사는 세월을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든다. 대현이가 생각하기를 왜 나는 이렇게 복이 없는가? 질문하면서 인생을 한탄하고, 자책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가 입양한 것은 정말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다. 나의 부친은 나를 40이 넘어서 낳았다. 아버지 나이 70에 대학을 다녔다. 나의 부모님은 노년기에도 힘든 시절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76세. 아버지는 81세에 돌아가셨다. 내 나이 50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부모님은 살만큼 사시다가 가셨지만 40대 초반에 부모를 사별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외로움이 많았다. 손자, 손녀들은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가 많다. 명절이 되면 갈 곳이 없다. 이미 이런 경험을 한 나로서는 대현이에게 다시 부모를 너무 일찍 잃게 되는 것을 물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입양에 대한 갈등이 크다.
아내는 입양까지는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주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입양에 관한 방송을 시청하게 되었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아버지, 어머니, 부를 대상이 없는 것만큼 서러운 것이 없다고 하는 내용이 가슴을 짓눌렀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우리 집에 오게 된 대현이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이제는 정말 엄마, 아빠, 누나의 정을 나눈 사이가 되었는데, 철이 들었는데 이별하면 평생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아들을 키워보지 않았다. 두 딸들은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아들은 개구쟁이 그대로였다. 대현이은 장난을 좋아하고 싸우기도 좋아한다. 고집쟁이고, 잘 토라진다. 두 딸들과 앞으로 사이좋게 지낼 지 의문스럽기조차 하다. 이런 모든 것 보다도 우리 집에 맡겨진 아이를 시설로 보낸다는 것이 맘이 아팠다. 그녀는 힘들겠지만 이미 지난 3년간도 키워왔으니 어쩌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대현이는 엄마에게서 진지한 질문을 받았다. 대현이 우리 집에서 살래 아님 다른 곳으로 갈래? 대현이는 지난 3년간을 생각해 보았다. 이전에 할아버지 집에서 살 때 어린지 집 종일반에서 시달렸던 생각이 떠올라서 서글퍼졌다. 아빠는 며칠에 한 번씩 보였다. 엄마는 얼굴조차 모른다. 그나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이제 내가 갈 곳은 아빠에게도 아니고, 할아버지에게도 아니고, 고아원이란다. 이곳에서 3년은 이전에 살았던 5년의 세월과 비교할 때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곳 아버지는 때때로 엄격하고, 매를 들기도 한다. 어떤 때는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함께 놀아 주기도하고, 남자 아이의 심리를 이해해 주기도 했다. 함께 목욕하고, 등산하고, TV 보고, 인라인 타주는 아빠이다. 제일 좋은 아빠는 아니지만 보통의 아빠로 괜찮아 보인다. 엄마는 대현이를 사랑한다. 때때로 남자 아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을 사랑해 주는 엄마가 좋다. 이 엄마랑 헤어지기 싫다. 누나 둘이 있다. 큰 누나는 미국에 있고, 작은 누나는 함께 방을 쓰며 산다. 작은 누나는 영어학원 선생님이다. 성격이 불 같아서 때때로 화를 내면 무섭지만 공부도 잘 봐주고, 이야기도 잘 해 준다. 대현이는 자신과 같이 살아온 누나들과 헤어지기가 싫다.
엄마나 아빠가 대현이에게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갈래? 대현아 그룹 홈으로 갈래?’ 물어볼 때가 있다. 그 때 마다 자신은 속이 상한다. 이제 이 가정이 내 가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또 다른 어디로 보낸다는 것인가? 나는 이곳저곳 아니면서 살아야 되는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 말 좀 하지 마세요.’ 속이 상할 뿐만 아니라 불안한 생각으로 마음이 혼돈스럽다. 대현이는 속으로 나는 어디에서 살아야 되는 것인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이제 다시는 엄마가 다른 곳에 가서 살고 싶으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백번 물어도 대답은 같다. 엄마랑 같이 살래요.’ ‘엄마! 나는 엄마를 떠나서 어디에도 가기 싫습니다. 대현이는 엄마랑 같이 살래요.’
7. 최종회
대현이는 우리 가정에서 자라기를 원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경제적인 문제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 발을 들여 놓은 아이를 어떻게 내 보낼 수 있겠는가? 우리 가족은 대현이를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했다.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문제들은 함게 극복하며 한 가족으로 살기로 결심을 했다. 이 땅에 대현이와 같이 소외당하는 아이가 또 다시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는 입양을 결심한다. 입양을 결심하는 것은 신혼부부가 아이를 낳기로 계획해서 낳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랑의 결실로 낳는 것과 비교할 때 더 많은 정신적 갈등이 필요 했다. 홀트입양복지회에서 사무원이 왔다. 요구하는 입양서류를 만들어서 건넸다. 40일 후 서류가 도착해서 시청에 가서 입양 신청을 완료했다. 양대현이란 이름이 조대현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나는 아들이 하나 생겼다. 대현이는 이제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나는 동 사무소에가서 주민등록 등본을 신청 했어 교부 받았다. 집으로 가지고 와서 가족 들 앞에 보이고, 대현이도 보았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함께 가족의 기쁨을 나누었다. ‘대현이는 이제 이름이 양대현이가 아니고 조대현이다.’ 주민등록 등본에는 이전에 ‘동거인’에서 이제는 ‘자’로 바뀐 글자가 눈에 유난히 크게 들어온다. 대현아! 이제 너는 내 아들로 자라야 한다. 자랑스러운 조대현으로 자라다오! 과거에 슬펐던 기억들을 다 잊어버려라. 내 가족이 되어 새롭게 살아 다오.
